2022.02.10 04:15 _Martin Chalfie
지난 일과를 정리하기 위해,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늦은 새벽 펜을 들면 밀려오는 생각들이 있다. 나도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으니까, 하루의 아쉬운 점은 꼭 이렇게 어두운 밤에 한꺼번에 밀려오곤 한다. 사소한 말실수나 괜한 고집들... 낮엔 남들의 목소리로 머리가 아팠다면, 밤엔 내 목소리로 머리가 지끈거려온다. 이럴 때면 새벽이 조용한 이유는 차마 소음에 날 묻어 죽일 수는 없어서일까 하는 의심이 고개를 들기도 한다.
아무도 몰랐고, 앞으로 그 누구도 모를, 나만의 일들이 괜한 수치심을 불러일으킨다. 몇 년 뒤에 떠올려도 이불을 걷어차고 침대에서 뛰어다닐 것 같은, 해소되지 않을 감정. 이런 것까지 노트에 옮겨 적어야 하는걸까, 싶다가도 과거를 교본 삼아 나아가야지, 했던 새해 다짐이 글을 써내려가길 재촉한다. 모르겠다, 빨리 써버리고 모른 척 하고 싶어. 라며 펜을 휘갈기고 나면 어김없이 잉크가 새어나온다. 어째 평소보다 더 새는 것 같은데, 미심쩍은 심정으로 오래된 만년필을 들어보면 나도 모르는 새 조금 깨져있을 때가 있다. 하필 지금인건 반갑지가 않다. 아니, 오래 곁에 두고 쓴 것들은 언제나 그렇다. 내 겿을 떠나겠노라 선언하듯 낡아빠져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약간의 허무함을 느꼈다. 그러나 지금은 책상이고 손이고 구분할 것 없이 잉크 범벅이 되었으니 그런 감정마저도 사치이리라.
"피곤해..."
일어나서 헝겊을 가져와야 하는데, 그래서 아직 젖지 않은 종이들을 치우고 책상을 닦아야 하는데. 오늘따라 몸이 무겁다. 이런 걸 두고 그들은 천근만근이라 하던데. 시답잖은 생각을 털어내고자 고개를 흔든다. 금발의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모습은 하루가 지는 노을 아래서야 예쁘지, 끝이 잉크로 젖은 채 일렁이는 촛불에나 비치는 것은 처량하기밖에 더 할까? 의자에 한껏 기대앉아 천장을 바라보면 청소를 할 때 미처 발견하지 못한 먼지덩어리가 시야에 들어왔다. 왜 이렇게 할 일이 많담. 쌓인 일정과 고갈된 체력. 몰려오는 피곤함은 딱딱한 의자와 침대를 가리지 않았다. 늘어진 채 깨진 만년필을 놓으면, 어느새 책상을 타고 흘러 바닥에 고인 잉크 위에 작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. 분명 누군가 이 모습을 발견한다면 내가 죽은 줄 알겠지. 부리나케 뛰어와 숨을 쉬는 지 확인하고, 심장이 뛰는 지 가슴에 귀를 대 볼 것이다.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나면 날 깨워 타박하곘지.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런걸 신경 쓸 정도로 맑은 정신이 아니었다. 늦은 시간까지 날 기다릴 사람이 있는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재단의 사무실에나 박혀있는 것이 그 증거가 되겠다.
듣는 사람 하나 없는 "집에 가야... 하는데." 따위의 투정을 읊조리고, 이미 거의 감긴 눈을 마저 감는다.